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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고려백자연구소, 고려백자 재현 및 복원

고려백자 천년의 부활

용인고려백자연구소(소장 조광행)에서는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서리 고려백자 요지(사적 329호)에서 발굴한 백자 파편의 성분 분석 및 형태를 연구, 고증 등을 거쳐 명품 <고려백자>를 당시 기술 및 재료로 복원한다고 밝혔다.

(용인고려백자 복원은 도편을 중심으로 연구 팀이 검증하고, 기술 토론을 거쳐 제작하므로 목록이 수시 변경되므로 생략.)

용인을 중심으로 약 10C부터 제작되어온 고려백자 중, 현존하는 작품을 선정하여, 21세기의 기술과 미학, 학술 연구 등을 통해 1000년 전의 아름다움과 예술 가치, 기물로서의 가치 등을 재현하고자 한다는 것이, 용인고려백자연구소의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용인기자협회(회장 천홍석)에서는 용인고려백자연구소와 (재)한국지식문화재단이 함께 용인고려백자의 문화적 예술적 가치에 대해, 용인시에 그 소중함을 제일먼저 용인시민들에게 널리 홍보하도록 협조를구하고, 단계적으로 유네스코 세계인류문화유산 추진위원회를 통해 유네스코등재를 추진할 예정인 것에 대해 시리즈로 합동취재단을 구성. 특별 취재하여 고려백자의 우월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제1편 : 용인 고려 백자 재현 및 복원)

(제2편 : 용인고려백자 초록)

제3편 : 고려백자란무엇인가?)

(제4편 : 유네스코(unesco) 세계인류문화유산 등재)
재현 작품 목록

1. 백자 상감모란 연문매병(1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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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백자 상감 국화문과형 화병(13c)

 

3. 백자 상감 모란 유로문 매병(12c)

   

4. 백자탁잔(11c)

 

 5. 백자 다완(10c)

 

 6. 백자상감 뇌문 마상배 (12c)

 

7. 백자연문 과형 화병(12c)

   

 8. 백자 음각용문 매병(12c)

 

 9. 백자 과형 주전자(13c)

   

10. 백자 철화 모란문 광구병

 

 11. 백자 철자 광구병 백자

 

 12. 화형 철사 화문완(12c)

 

 13. 용인 고려백자 서리 상반 출토물(3~5)

 

재현 복원 일정

1. 201561일 유약 시제품 완성(가스가마로 실험)

2. 201563~ 2015710일 제작

3. 2015710일 초벌 구이

4. 2015720일 유약 작업

5. 2015722일 가마 작업

6. 2015723일 불가마 소성(24시간)

7. 2015726일 재현 작품 완성

 

장소 -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315번지 석봉 한도현 도요

스텝 - 연구 및 기획 : 조광행(용인고려백자연구소 소장),

김성곤(한국학중앙연구원 학예실장(),

김연희(밝달문화예술원장)

기술 및 실험 : 수안 장영안(용인고려백자 명인)

                                   마순관(용인고려백자 명인)

                                   석봉 한도현 (용인고려백자 명인)

제작 : 석봉 한도현 도예 팀

진행 :  차현호 실장

  발표 및 전시 - 2015816~ 821

 

   
 

용인고려백자요지와 용인옹기가마를 유네스코 세계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합시다.

 

용인 고려백자연구소(소장 조광행)가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서리 소재, 국가 사적 제329호 고려백자 요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나섰다. 용인 고려백자연구소는 일단 고려백자요지와, 천주교인들이 필사성경을 넣어 전도활동에 이용한 용인옹기가마 유적 두 가지를 중심으로, 세계문화유산 신청을 준비하고, 추후 연구 결과에 따라 고려청자의 발상지인 전남 강진, 조선백자의 생산지인 광주와 더불어, 공동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용인 고려백자연구소 조광행 소장은 용인시 소재 고려백자 요지는 9~10세기경 한중 문화교류의 산 증거이며 용인은 장보고의 세계무역센터인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 신라, 일본, 태국, 인도 등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로 퍼져나간 백자 문화의 발상지라며 서리 사적지는 고려왕실에 왕실 기물로 공납된 우리나라 최초의 백자문화유적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 추진위를 구성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려백자연구소 김연희 부소장은 백자는 중국에서 575년에 최초로 출토된 이래 발전하여, 경덕진 등지에서 진보된 당시의 첨단 하이테크다. 옥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린 백자 제조 기술이 장보고의 무역선단에 의해 한반도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왕실에 공납하기 좋은 용인시 이동면 일대가 백토, 유약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용인 고려백자가 발달된 것으로 추정한다.” 면서 용인은 백자의 발상지로서 서리 가마는 83미터라는 세계 최장(중국 가마터는 가장 긴 것이 73미터)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치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용인 고려백자연구소는 지난해에 제1회 용인 고려백자축제를 개최했으며, 올해는 고려백자, 천년의 부활이란 주제로 제2회 축제를 준비 중이다.

연구소는, 이번 축제를 위해, 용인 사적지 발굴 과정에서 확보한 고려백자 도편을 분석, 복원하는 작업 중이며, 현재 명지대, 단국대, 경희대, 강남대 등 도예 전문 교수들과 용인문화원 연구 자료를 토대로 수안 장영안, 마순관, 석봉 한도현 도예가가, 이천 전통 가마에서 실험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1. 용인에는 ()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기물 <백자>10세기인 고려시대 초기부터 생산한 가마터가 남아 있습니다.
용인은 우리나라 백자 산업의 최초 발상지로서 세계 최장(最長)<고려백자> 가마터가 국가사적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무이한 연고지이며, 이 가마터는 유네스코에 세계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합니다.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는
-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가마이며
- 우리나라 최대의 83미터 대형가마(중국 최대 73미터)이며
- 9세기 경, 장보고의 국제무역 활동에 따른 동아시아 문명 교류의 증거이며
- 10세기 후반~12세기 전반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고려왕실 전용 기물이다.
 
 2. 용인옹기가마는 김대건 신부 등 용인 지역에 숨어 천주교를 신앙하던 사람들이 은둔지에서 옹기를 굽던 유적으로서 이동면 묵리 등 여러 곳에 산재합니다. 천주교인들은 이 옹기에 필사본 성경을 넣어 이를 지게에 지고다니며 전도하던, 세계 천주교사에 볼 수 없는 극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김대건안드레아가 신부유학생으로 발탁된 양지면 은이성지에서 그의 주검이 묻힌 미리내성지에 이르는 산마루길, 이 산마루길에 뻗어나간 골짜기인 운학동, 사암저수지, 김대건 신부가 어린 시절을 보낸 묵리, 고초골 등에 천주교인 은거지와 옹기 유적지가 산재하며, 이는 천주교 역사유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죵교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3. 백자와 청자 제작 기술은 9세기경 해상왕 장보고에 의해 중국에서 한반도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장보고는 완도에 무역센터인 청해진을 세워 군사 1만 명을 주둔시키고, 무역 대사(大使)가 되어 신라, 일본, 중국, 필리핀, 태국, 서역(西域) 등지를 상대로 활발한 국제무역 활동을 했습니다.
 
서기 827~835년 사이에 전라남도 완도(청해진)에 국제무역기지를 세운 장보고는 당시 인기절정이던 최첨단하이테크 상품인 청자와 백자를 한반도에서 직접 생산, 이를 국제 무역 시장에 공급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따라서 해상무역기지인 청해진을 중심으로 주로 한반도 서해안에서 청자와 백자를 생산하는 시설이 집중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런 중에 일반 무역이 가능한 청자는 청해진에서 가까운 강진에서 주로 생산되었으며, 후삼국시대를 거쳐 서기 918년 고려 왕조가 창업되자 왕실 기물로 쓰이던 백자는 고려 수도 개경(지금의 개성)에서 가까운 용인 서리에서 생산, 공급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청자와 백자는 통일신라시대에 국제무역망을 통해 유통된 첨단하이테크 상품 중의 하나였으며, 9세기 이후 동아시아 여러 나라간의 문화와 문명 교류의 역사적 증거물입니다.
 
4. 백자는 왕이 사용하던 기물(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종묘재실에서 선대 국왕들에게 올리던 제사의 제기)로서 세자부터는 백자를 사용하지 못하고 대신 청자를 이용했습니다. 이후 사찰과 사대부가에서도 청자를 이용, 청자 수요가 급증, 고려청자가 발달했습니다.
 
따라서 일반 백성은 고려백자 사용이 금지되어 사용할 수 없고, 거래할 수도 없어 고려시대 도자기 문화는 청자 위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조선에 이르러 백자가 왕만이 아닌 왕실 기물로 널리 쓰이고, 양반가의 소유가 가능해지면서 왕궁에 가까운 경기 광주의 관요에서 이를 생산해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백자의 역사는 고려초기 즉 10세기에 용인 서리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으며, 용인고려백자는 광주의 조선백자보다 약 5백년 이상 앞서며, 1천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5. 용인고려백자연구소는 용인고려백자요지와 용인옹기가마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시민운동을 펼침과 동시에, 용인 고려백자의 도편 분석을 통해 원형을 복원하고, 우수한 고려백자를 재현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자랑스러운 용인고려백자요지와 용인옹기를 유네스코 세계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운동에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571
 
 - 용인고려백자요지 및 용인옹기가마 유네스코 세계인류문화유산 등재추진위원회
- 용인고려백자연구소
- 재단법인 한국지식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