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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목사 칼럼] 이해관계를 넘어 공공의 선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공공의 선과 목적을 추구해야 한다

 

어느 교단의 큰 집회를 갔을 때 한 장로님이 찾아왔습니다.


그 분은 대뜸 저를 보더니 “목사님, 왜 나에 대해 그렇게 안 좋게 말씀을 하고 다니십니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저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거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회하지 않고 직답으로 정면 승부를 걸었습니다. “장로님, 제가 장로님 욕을 많이 했죠. 그러나 제가 익명으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덕과 제 나름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 것은 장로님도 잘 아시죠.” 저는 그 분을 전혀 만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 분은 엄청나게 큰 회사를 이루었고 교회도 한동안 봉사도 잘 했습니다. 담임목사님도 부모님 이상으로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이해관계가 얽혀져 가지고 담임목사님과 좋은 관계가 적대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교회를 나올 뿐만 아니라 한동안 한국교회의 뜨거운 감자가 될 정도로 풍지편파를 일으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담임목사님을 고소하기도 했고 공중파에 제보를 해서 그것이 떠들썩하게 고발 프로그램에 나오게 했던 분입니다.

 


그리고나서 장로님은 그 큰 사업이 결국 부도가 나고 회장님에서 야인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을 안 만났을 때는 재직세미나나 여러 집회 때 성도들에게 교훈적으로 이러면 안 된다고 당당하게 했는데 직접 대면을 하니까 인간적으로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머리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저에게 “목사님, 다 저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더 내가 억울하고 그 목사님도 분명히 문제가 있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로님, 공동묘지에 가도 이유 없는 무덤이 어디가 있습니까? 나도 장로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장로님 편에서는 백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부분은 하나님이 판단하실 일이 아닙니까?

 

 

장로님께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부분은 하나님께 엎드려서 기도로 해결했다면 더 장로님을 높여주시고 축복해 주셨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누가 뭐래도 교회 내부 문제를 자정능력으로 해결하지 않고 사회법정과 방송사까지 제보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교회 전체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상처 받게 했다는 것은 내가 장로님한테 뺨을 몇 번 맞더라도 너무나 잘못하고 아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나중에는 장로님도 나의 진의를 알고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그래서 저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과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다시 재기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하고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습니다.


장로님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금도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귀한 성도들이 상처받고 교회를 떠저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아니, 그토록 충성하며 헌신하던 중직자들도 교회와 목사를 향하여 오히려 적이 되어 공격을 하기도 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입니까? 그런데 대부분 문제가 발생하는 모습을 보면 겉으로 볼 때는 정의감과 개혁을 앞세우지만 내부적으로는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공공의 선과 목적을 추구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조금 손해보고 기득권을 잡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높아지고 교회가 유익이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교회가 조금 부족하고 담임목사가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지금 그 교회와 목사를 쓰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내가 조금 힘들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역설적으로 더 하나님을 붙잡고, 더 교회와 담임목사님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그 성도를 높여주시고 축복하여 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며 옷매무새를 여미며 더 낮아지고 더 섬겨야 합니다.


저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 새에덴교회는 가락동 개척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교회 안에서 이해관계에 얽힌 내부 분란이나 불미스러운 사건이 없었습니다. 오직 로드십 신앙과 생명나무 신앙을 붙잡고 주님만을 왕으로 높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선포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부흥이 침체되고 어렵다고 하는 때에, 끊임없이 부흥하는 교회요, 개교회를 넘어 민족과 역사를 섬기는 교회로 영향력의 지경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올 한 해도 마지막 한 달이 남았습니다. 한 해 동안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얼마나 눈물겹습니까? 늘 울어도 부족하고 죽도록 충성해도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 아닙니까?

 


앞으로도 우리 새에덴교회는 이처럼 눈물로 감사하는 교회요, 은혜를 생명으로 여기는 교회요, 개인의 이해관계보다는 주님의 뜻과 공공의 선을 사명으로 여기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울먹거리는 가슴으로, 우리 앞을 지나가시는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