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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규시장칼럼]호가 호위 처세

전국시대(기원전 403-221) 이야기다.

 

초(楚)나라의 선왕(宣王)이 어느 날 문무백관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우리 재상 소해휼(昭奚恤)을 무서워하고 있겠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강을(江乙)이란 신하가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북방국가들이 일개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을 두려워하겠습니까?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호랑이는 백수(百獸)의 왕으로 다른 짐승을 보면 당장 잡어먹습니다. 어느 날, 호랑이가 여우를 잡았습니다.

 

그때 여우가 말하기를 '천제(天帝)는 나를 백수의 우두머리로 정하셨다. 그러므로 만일 나를 잡아먹으면 천제의 명을 어기는 것이다. 만일 네가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잠깐 내 뒤를 따라와 보라. 나를 보고 도망치지 않는 짐승은 단 한 마리도 없을 것이다. 그걸 보면 너는 깨닫게 될 것이다. 이에 호랑이는 '좋다' 하고 따라 나섰지요.

 

 

 여우가 앞장 서고 호랑이는 그 뒤를 슬슬 따라 갔습니다. 마침 한 마리의 짐승을 만났습니다. 그놈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습니다. 그 다음도, 그 다음도 짐승이란 짐승은 모두 놀라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를 본 '호랑이'는 '아하!' 과연 여우의 말대로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여우 뒤에 따라 오는 호랑이를 보고 짐승들이 도망친 것인데 말씀입니다. 북쪽 나라들이 무엇 때문에 소해휼을 무서워하겠습니까? 그것은 그 배후의 초, 곧 주군(主君)의 강력한 군대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사는 마을에 잘 아는 사람이 길에서 우연히 마추칠 때가 자주 있었다. 그 사람은 골프를 즐기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나와 수인사 끝에 반드시 나오는 얘기가 아무개 인사와 어제 골프를 함께 했다며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냐고 응수하며 지나치고 만다. 그사람이 거론하는 인사는 지역에서 권력이나 돈있는 힘깨나 쓰는 인사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마치 그런 힘있는 인사와 친분 있음을 과시하면서 자기도 그런 배경이 있으니 나를 알아달라는 것인지 그 만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지 의아심이 든다. 정치권력이던 재력이던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정치권력도 국민(시민)이 주는 것이고 그것도 인연이 다하면 구름 걷히듯 스러지는  속성이 있다. 재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세상에 빈 손으로 왔다가 인연이 있어 내가 노력하여 번 돈을 일정 기간 관리하다가 떠날 때 빈 손으로 가기 때문에 흔히 표현하기를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 하지 않는가...

 

 

세계를 제패했던 알렉산더 대왕도 죽을 때 너무나 허망한 마음에 유언하기를 '내가 죽거든 내 두 손을 관밖으로 내놓게 하라'고 하였다.  시민은 바다와 같고 시민에 의해서 뽑힌 사람은 배와 같다고 했다. 바다는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풍랑이 일어 성난 파도는 배를 전복 시킬 수도 있다. 권력이 있다고 재물이 많다고 오만하면 민심이 등돌리게 된다.

 

 

그래서 권불십년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남의 권력을 배경으로 신분과 힘을 과시하면서 남에게 군림하려는 자세야 말로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자기의 위엄을 뽐내려고 하는 간교한 '호가호위'가 아닌가! 요즘도 나의 집무실에 가끔 그런 인사가 들른다. 중앙 권력기관에 자기와 아주 가까운 인사가 있는데 필요하면 도와주겠다고 한다. 고마운 말이다.

 

 

그런데 은연중 과시하려는 인상이 역력하다. 마치 높은 분과 친하기 때문에 자기의 신분이 함께 상승이라도 된듯이 말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하, '호가호위'하는 분이 한 사람 더 있구나, 하고 치부해버린다. 대개 속이 허한 사람일수록 그런 처세에 능한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백수 위에 군림하려는 간교한 여우와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뒤에 있는 호랑이가 사라졌을 때 앞에 있는 곰에게 물려 죽을 수도 있다. 매우 위험한  처세술이 '호가호위'일 것이다.

 

 

 잡고 있는 권력을 놓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권력있는 정치인에게 사람들이 아첨한다면 마치 여우 뒤를 따라오는 호랑이를 보고 무서워하는 뭇 짐승들처럼 그 사람 인격보다는 그가 잡고있는 권력을 보고 잘 보이려는 것일 뿐, 권력을 잃은 자연인은 곧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기 쉬운 것이 이 세상 인심이고 소위 '염량세태'이다. 

 

 

이 세상에 영원히 자기를 지켜줄 권력이나 어떤 세력도 없는것이다. 잠시 인연따라 주어졌다가 인과관계가 사라지면 뜬구름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권세이고 재물이다. 역사상 최근에도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최고의 권좌에 있다가 물러난 분도 불과 채 2년도 못되어 세상을 떠난 분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무엇을 집착할 것인가...! 

 

 

이 세상을 살면서 권력이 있다고 뽐낼 일도 아니고 권력과 재물이 없다고 비굴할 이유도 없다. 힘있는 사람이나 힘없는 사람이나 우주라는 광대한 시간에 비추어 백년 후에 이 지구상에 남아있을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권세나 재물도 한 점의 티끌과 같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백년탐물 일조진, 삼일수심천재보(百年貪物 一朝塵, 三日修心天載寶)', 백년간 모은 재물이 하루 아침에 티끌이 될 수 있고, 삼일간 닦은 마음(좋은 일 함)이 하늘에 보배를 실어놓는(저장) 것과 같다 라고 말이다.

 

 

권력에 기생하는 것은 일순간이다. 그리고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이다.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면 호랑이의 밥이 될 수 있다.  자기를 가장 확실하게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기를 지키고 자력(自力)을 키우는 첩경은 자기의 실력을 연마하는 것이며 '도덕적 자본(資本)'을 비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길만이 진정으로 자기를 무장(武裝)하는 것이고 일생동안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사람이여, 제발 꿈 깨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