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호남 지방에 부자가 살고 있었다. 천석지기 부자는 후덕한 사람이었다. 일년 벼농사 지으면 천석을 거둔다고 해서 천석지기 농사라 하여 그 고을에서는 첫째가는 대농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머슴을 고용하여 농사를 짓고 있었다.
3년 기한으로 머슴을 두었는데 1년에 새경(연봉)을 쌀 10가마로 정하여 3년 만기가 되었기에 주인은 머슴 두 사람을 불러 말하기를,"갑돌이와 을쇠, 자네들 두 사람은 지난 삼년간 우리집 농사를 잘 지어줘 고마웠네. 오늘로서 약조한 기한이 끝나서 내일 새경을 줄테니 자네들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장가 들어 처자식 거느리고 잘 살기 바라네... 그런데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는데 떠나는 마당에 미안하지만 볏짚 갖다가 새끼줄을 많이 꼬아 놓고 가기 바라네.내가 쓸데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니 과히 섭섭하게 생각지 말게!"
갑돌이와 을쇠는 각자 생각해 보았다. 갑돌이는 지난 삼 년동안 죽도록 일하고 고생한 것도 억울한데 떠나는 마당에 새경 받아서 내일 떠나면 그만인 것을 무엇 때문에 새끼줄을 꼬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주인어른의 마지막 청인데 인사 치레로 조금만 새끼줄을 꼬아놓고 가야겠다.. 작심하고 볏짚 한 단을 갖다 새끼줄을 팔을 벌리면 세 발 정도 될 분량으로 꼬아 놓은 다음 잠을 청했다.
그러나 을쇠는 달랐다. 을쇠는 생각하기를 주인의 마지막 청이니 떠나는 마당에 성심 성의껏 새끼줄을 꼬아서 그 동안 주인 덕분에 올데 갈데 없는 나를 걷어줘서 밥 굶지 않게 살게 되었는데 보답을 잘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밤새는 줄 모르고 새끼줄을 수십발 되도록 잔뜩 꼬아 놓았다.
다음날 주인은 두 사람의 머슴을 떠나 보내는 작별을 하면서 말하기를 "어제 새끼 줄 꼬아 놓으라고 일렀는데 꼬은 새끼 줄을 가져오게..." 하였다. 두 머슴이 꼬아놓은 새끼줄을 가져오자 주인이 말하기를 "각자 꼬은 새끼 줄을 갖다가 내가 광(곶간;창고)문을 열어 놓았으니 그곳에 있는 비단을 꼬은 새끼줄 만큼 묶어서 고향으로 가져가서 살림 밑천 장만하여 보태 쓰기 바라네...!"
그 순간 갑돌이는 속으로 아차! 하면서 저윽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을쇠는 밤새도록 정성껏 꼬은 새끼줄로 비단을 묶으니 소 달구지에 실어야만 비단을 가져갈 수 있었다. 당연히 을쇠는 부자가 되었고 갑돌이는 달랑 비단 한 필만 등짐 속에 넣고 길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갑돌이와 을쇠의 차이는 마음을 어떻게 썼느냐 하는 용심(用心)에 있었다. 마음을 잘 쓰고 못 쓰는 차이로 인해 두 사람의 운명이 달라졌던 것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 형체가 없으나 사람은 각자 마음을 지니고 쓰며 사는 것은 분명하다.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으면 바늘 끝도 들어가지 않고 크게 사용하면 허공과 같아서 이 세상 모든 것과 우주를 싸고도 남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고 이스라엘의 유명한 예언자 에레미야는 "네 마음의 밭을 새로 갈아라"하고 외쳤다.이 세상 모든 일은 내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이리라.
성경 말씀에는 '마음이 가난한 자 복을 받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렵다'고 하였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이 바르고 청렴하다는 뜻일 것이다. 욕심이 지나쳐 화를 입는 경우도 많고 탐욕으로 인하여 존경은 커녕 지탄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마음의 밭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거두는 곡식이 다르다. 선(善)과 긍정의 종자를 심으면 선과(善果)를 얻을 것이요, 악(惡)과 부정의 종자를 심으면 악과(惡果)를 얻을 것이다. 밭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뿐이다. 한 생각 잘못하면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음 잘 쓰면 금시발복(今時發福)도 한다.
요즘은 마늘 밭만 뒤져도 1백억원대의 돈이 쏟아져 나오고 자동차도 나온다는 뉴스다. 요지경 세상의 단면(斷面)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마음밭(心田)에 복의 씨앗을 심는 것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옛부터 선인들이 이르기를 '심보(마음 보자기)'를 잘 써야 복 받는다고 하였다.
마음 보자기에 더러운 잡동사니를 쌀 것인가, 아니면 값지고 빛나는 보석을 쌀 것인가 하는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요즘 사회 풍조가 남의 허물이나 약점을 열심히 찾아내어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흉은 앞주머니에 차고 내 흉은 뒷주머니에 찬다는 속담처럼 자기의 허물은 감추기 바쁘다. 그리고 각종 '파파라치' 제도를 만들어 놓으니 밀고하는 풍조를 제도권에서 조장하는 격이 되어 '무슨 무슨 파파라치' 학원까지 성행한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보시함을 '복전함(福田函)'이라고 하는 이유도 마음밭에 복의 씨앗을 심으라는 뜻일 것이다. 평소에 마음 밭에 복의 씨앗을 심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 이런 실화도 있다. 지금의 모 재벌 그룹의 총수가 젊은 시절 겪었던 일이다. 그 재벌 총수가 젊었을 때 6.25 전쟁 직후 몹시 추운 어느 겨울 날 트럭을 몰고 지방에서 서울로 향해 가는데 길가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손을 흔들며 차를 세우는 왠 서양 여자를 발견하였다. 차를 세워 놓고 말이 통하지 않지만 대충 손짓 발짓 하며 얘기를 듣고 보니 차가 고장나서 추위에 떨고 있으니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조씨 성을 가진 트럭 운전사는 차를 고장 난 것을 고칠 줄 아는 정비 기술도 가지고 있던 터라 간단히 차를 고쳐 줄 수 있었다.
그 서양 부인은 연락처를 조씨 보고 달라고 하여 주소를 적어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부인은 미국 대사의 부인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조씨는 운수업을 일으켜 그 미국 대사 부인의 도움으로 군수 물자를 수송하게 되어 사업을 크게 일으켰고 나중에는 월남에까지 진출하여 해운업으로 재벌의 길을 가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그 회사는 항공사도 경영하는 세계적 굴지의 대기업이 되었다.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길에서 곤란을 겪고있는 낯 선 서양 여인을 도와준 것이 그런 복을 불러 왔으니 마음 밭에 선행의 씨앗을 심은 결과일 것이다.
새끼줄을 열심히 꼬아서 주인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을쇠의 마음 씀씀이가 부자가 되는 복밭이 되었듯이 나도 일상 생활에서 용심(用心)을 잘해야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