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4월 취업 준비생 등 사실상 실업자를 포함한 체감실업률은 23.6%에 달했다. 장년층의 은퇴도 빨라지고 있어 전체 실업률도 높게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실업자의 숫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산업사회를 겪으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이전하기도 하고, 자동화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지기도 했다. 인간의 근력과 감각을 대신하는 기계들의 출현으로 많은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었고 이제는 지적능력마저도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가 돼 간다. 의사, 변호사, 세무사, 공무원 등 비교적 고임금의 일자리 상당수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다.
마트 점원, 운전, 비서, 사무직, 요리사 등 고임금도 아닌 서비스 직종마저도 로봇이 대신할 날이 머지않았다. 아예 도시 전체가 거대한 로봇처럼 변해가면서 청소나 경비, 지자체 일마저도 로봇에게 내주어야 할 판이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와, 훌륭한 직장 얻어 평생 안정된 삶을 살겠다고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우선 우수하게 졸업을 했어도 로봇과의 경쟁 자체가 무리다. 로봇만큼 오랜 시간 일도 못하고, 저임금에 만족할 수도 없다.
더욱이 그들의 능력을 뛰어넘기가 힘들다. 학교가 학업이나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학생들이 외면할 것이다. 이미 그 충격은 시작되었다. 아마도 많은 실직자가 문 닫는 학교에서 쏟아질 것이다. 기업이 사람보다는 말 잘 듣는 로봇을 써야 생산성 및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음에도 정규직을 강요하는 정부의 정책은 기업과 근로자 모두를 공멸의 길로 내모는 일이다. 물론 단기간에 어쩔 수 없다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 산업계 전반을 회복 불능의 환자로 만들고 말 것이다.
일자리 없이 빈둥빈둥 사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을 게다. 따라서 일자리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먹고사는 경제적 안정을 찾기 위해서도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하는 점에서도 일자리는 중요하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이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오던 일들을 거의 다 로봇에게 맡겨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우리 사회는 깊이 있는 성찰과 고민이 없다. 불과 몇십 년 안에 도래할 이 심각한 상황에 대한 고민 없이 일자리 정책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과거 노예에게 자유를 주었더니 다시 노예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유를 얻은 노예가 그 자유를 누릴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노예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삶 속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지 알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삶의 방식을 잘 모른다.
국가정책도 이런 삶을 대비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충실하게 나를 대신해 일해 줄 기계노예를 수천만 가지나 탄생시킨 인간들이 그들과 경쟁을 하고 그들에게 일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투쟁하는 것은 뭔가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자신이 진정 하고픈 일을 추구하는 자아실현 사회의 구조를 설계하고 이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일자리 대책이 될 것이며, 인류 문명의 진화를 위한 우리의 사명일지 모른다.
전하진 썬빌리지포럼 의장·前 한글과컴퓨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