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싸늘한 깊어가는 가을이다. 산과 들에는 누릇 누릇 단풍이 물들어가고 들녘에는 익어가는 벼가 황금 빛으로 수놓고 있다.
보기만 해도 풍요를 느끼는 계절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혜택을 베풀지만 어떤 댓가도 요구하지 않는다. 햇볕과 공기와 물이 우리 인간에게 댓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사람은 남에게 조금만 도움을 줘도 생색을 내고 공치사 하기 바쁘며 댓가를 바라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무한한 자비와 겸허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나무에 단풍으로 물든 잎새는 제 역할이 끝나면 흙으로 돌아간다. 낙엽은 그래서 뿌리로 돌아간다는 '낙엽귀근(落葉歸根)'이란 말이 있다.
어디 수목 뿐인가...?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제 역할이 끝나면 소멸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세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지구는 무대요, 인간은 배우이다'라고 했다. 제 역할이 끝나면 무대에서 배우는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사람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끝도 없는 무한 궤도를 달리려 하는데서 비극이 생긴다. 인간의 욕망은 '비움'을 모르는 경향이 있다. 욕망은 끝이 없어서 부자는 더 많이 가지려 하고 권력을 쥔 사람은 더 큰 권력을 움켜쥐려 한다.
그리고 한 번 움켜쥐면 백 년 내외로 살면서 천 년 만년 누리려 한다.
마치 시지프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는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끊임없이 산꼭대기로 무거운 바위 덩어리를 비지땀을 흘리며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산꼭대기에 바위 덩어리가 오르는 순간 그 무게로 인하여 산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시지프는 다시 산꼭대기를 향해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을 끝없이 반복한다.
시지프의 신화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빚어지는 고통과 불행을 시사한다. 멈추고 비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채우려 드는 데서 불행이 시작된다. 욕심을 채우려 들다 보면 욕망을 달성하지 못해서 괴롭고 욕망을 달성한다 해도 만족할 줄 모르는데서 마음의 괴로움을 자초한다.
마치 시지프가 산 꼭대기까지 오른 것에 만족하지 않고 끝 없이 바위 덩어리를 산 꼭대기에 올려 고정시키려는 욕망의 어리석음이 삶을 고달
프고 힘들게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많은 부정적인 요소들로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 같다. 욕심, 증오, 시기, 질투, 비방 등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음은 법정 스님의 글이다.
-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잡힐 듯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그런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 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 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 두고 싶다. 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개가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 두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 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될 것 같다.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 우리는 바깥 일에만 팔려 자기 자신을 안으로 들여다볼 줄을 모른다. 우리 시대는 나라 안팎을 가릴 것 없이 온통 경제 타령만 하면서 사람의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 사람으로서 삶의 최고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 것인가는 저마다 처지와 소망이 다르기 때문애 한결같을 수 없다. 하지만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살건 간에 스스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가을바람에 곡식과 과수의 열매가 익어가고 또 떨어지듯이, 우리들의 삶도 또한 익어가고 떨어질 것이다. 가을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 귀로 자기 자신의 소리에 귀기울여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을은 명상하기에 가장 적합한 계절이다.
관세음(觀世音)이란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 즉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임이다. 바깥 소리가 자기 내면의 소리와 하나가 되도록 지극하게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침내 귀가 활짝 열린다. 이를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고 한다.
- 법정 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중에서 발췌.
가을은 조락(凋落)과 비움의 계절이다. 벗어버리고 비워내는 지혜를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가을은 사색과 자아 성찰의 계절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신 경림 시인의 <갈대>라는 제목의 시(詩)를 소개하며 이 글의 끝을 맺는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은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